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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들

[존 메이너드 케인스]시대를 풍미한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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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 위키 -존 메이어드 케인즈-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도서관에 갈 때면 종종 어린이 들을 위한 만화로 된 철학책이나 위인전 등을 즐겨 읽는다.전에 이 시리즈 중에서 존 메이어드 케인스를 찾아 보았었다.
케인스가 무용가인 부인을 처음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켜 주었는데 친구들이 반대했다는 내용을 보고 친구들이 반대한 것이 뭐가 그리 대수였을까 하는 것과 작은 의문들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들을 다 해소 할수 있었다.

그 친구들의 모임이 문학 예술 덕후들의 모임 <블룸즈버리>였다. 케인즈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여기서 부터 시작 되었다.


케임브리지 강사인 아버지 , 케임브리지 시장인 어머니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이튼스쿨,케임브리지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젊은 지성들의 모임인 <블룸즈 버리>는 사교모임으로 소설가, 화가, 철학자, 시인, 미술 평론가등 예술가 들이 많았고 주로 같이 모여 살며 지적 논쟁과 대화로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개인의 역량도 키워 갔다고 한다. 그러나 급진적인 사고방식 만큼이나 연인도 맞 바꿔가며 성에 대해서도 개방된 결혼 생활을 해왔고 동성간에도 사랑을 나눴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미국의 월터 리프먼은 ‘ 광적이고 삐딱하고 기이한 옷차림을 즐기고 농담에 공을 들여서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별종 집단’ 이라고 표현 할 만큼 그 시대의 지적 유행을 선도해 가는 오렌지족 같은 사고 방식이 모든 것에서 한 세대는 앞서 간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블룸즈 버리 친구들에게 케인즈의 연인 리디아 로포코바는 사회적인 인지도와 경제력도 자신들보다 높고 오랜 친구인 케인즈에게 우선 순위가 밀려나서 공개적으로 비판도 하고 은밀하게 반기도 들고 결혼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였다고 한다.
케인스를 알아보다 20세기 문예운동의 하나인 <블룸즈버리 > 그룹 회원들이라는 넌픽션 속에 픽션같은 스토리를 알게 된 것이 책속의 또 다른 재미 요소였다.




흥미로운 가십거리로만 말하기에는 현대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거시 경제의 창시자 경제학자 존 메이어드 케인스의 업적이 너무 많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가는 시장에 간섭 하지 않고“보이지 않는 손” 즉, 가격에 의해 자동으로 효율성을 유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유방임주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의 자율을 설명하는 대명사 격이 되었고 고전 경제학의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이론이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닥친 사회적 분위기에서 1936년 존 메이너스 케인스는 ○《고용, 화폐, 이자에 관한 일반이론》을 펴낸다. 자유방임주의를 부정하고 정부의 공공투자를 역설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한 그의 이론은 수정자본주의의 탄생을 이끌었으며, 고전학파 경제학 체계를 뒤집고 ‘케인스 경제학’을 수립했다고 평가받는다.
패전국 독일에 말도 안되게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겠다는 당시 국제 정세에 정치적 계산이 경제적 판단을 처참히 베어 버렸다며 통탄해 했고 그의 말대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 졌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금융과 경제'라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다.

케인스의 이론은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행한 ‘뉴딜 정책’의 토대를 마련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무렵 영국 재무부에 근무한 케인스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케인스는 1946년 6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책은 케인즈에 관한한 쪽지 하나도 다 기술 해 놓은것 처럼 상세하게 적혀있고 너무 두꺼워 읽을 수록 책장의 수가 늘어 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만 읽기엔 내용들이 하나하나 소설같이 재미가 있어서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려서 끝까지 읽어 보았다.

다음에 나오는 저서들, 기사 등 케인즈의 글들을 통해 간단하게 나마 그의 사상과 이론들을 만나 볼까 한다.

○[인도 화폐와 재무]첫 책
1905년대학 졸업후 인도부,재무부에 일하면서 만든책
○경제 학술지 [이코노믹 저널]1911년~1945
의편집자로 어느정도 명성을 쌓았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1919.
영국 대표단으로 파리 평화회의에 참석 했던 케인스가 독일에 대한 배상그 요구는 100억 달러를 넘지 말아야 하고, 연합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지게된 부채는 탕감하고, 미국이 유럽 부흥을 위해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대영 제국에 대한 케인즈의 짓 밟힌 이상과 타협하고자 쓴 첫 번째 저작물이다. 영국 공무원 사회에서 케인스의 위신을 높혀 주었지만 돈과 명예를 불러 오지는 못 했다.  

○[확률론]
1920년 케임브리리지로 복귀.계몽주의 시대의 과학적 합리주의를 확률과 불확실성에 적용해서 합리성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확률론의 핵심이다.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을 받는다.
○[케인스의 화폐통화 개혁법안]1923년 말
전후 경제 문제들은 정부의 물가 통제로 해결 할수 있다고 주장 했었다.영국의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높은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요소중 하나인 물가 안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자유 방임주의의 종언]1926
동명의 강연을 위해 쓴 연설문
루소의‘민주적 평등주의’와 관련이 높았다.  

○”처칠의 경제적 결과“기사 발표
금본위제 복귀에 대한 화이트 홀의 실수를 공격하는 기사를 발표 했다. 이로 처칠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로이드 조지는 할 수 있을까?> 팸플렛
영국의 교통 인플라를 혁신해서 현대 사회를 작동시키는 토대를 마련하는 거대한 프로 젝트로 고속 도로와 순환도로를 만들고 농촌 구석구석 까지 포장도로를 까는 어마 어마한 사업이였다.이를 급진 주의자 로이드 조지에게 맡겨 실업문제도 아울러 해결 하려 했다. 이는 자유 방임주의적 개인주의를 전면 거부 한 것이다.

○[화폐론]1930.
자본주의 자체는 적어도 B.C.3천년전 바빌로니아 제국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정부의 창조물이었다고 주장 한다.그는 돈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 수단이라고 했고 국가가 돈을 만들었고 그 가치를 항상 규제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자유 방임주의의 지적 토대를 전면적으로 공격했고 급진적인 이 의견은 경제 학계를 뒤 흔들어 놓았다.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1930 ,에세이
3 교대근무를 하거나 1주일에 15시간만 일 하면서 여덟배나 향상된 생활수준을 향유 할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이상적으로 그린 책이다. 인류가 기술발전과 복리의 힘으로 전례없이 높은 경제적 생산성을 얻게 되고 기계덕에 인간의 노동력이 점점더 쓸모 없어 질것으로 전망 했다.100년안에 결실을 맺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하는 욕구를 충족 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일을 더 하게 되고 이의 주된 원인은 불평등 때문이라 말한다.이를 실현 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여해야 한다.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
서구문자로 쓰인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 완전 고용을 이루기 위해 자유 방임주의가 아닌 정부의 보완책과 공공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 했다. 이를 케인스 혁명이라고 한다.

https://unsplash.com/@jfdelp


75여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 마다 케인스를 계승하고 있다. 100년안에 이루어 질것이라는 케인스가 말한 유토피아는 아직도 도래 되지 않았지만 남은 25년 안에 의미 있는 변화로 평등하고 조금 일하고 많이 쉬고 예술과 철학을 즐길수 있는 그가 그린 세상을 나도 꿈꿔 본다.